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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모른다
誰も知らない (2004)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났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오랜 시간에 걸쳐 조사했고 영화화하기 위해서 15년을 넘게 초고를 다듬었다고 한다. 실제 사건이 너무도 잔인하고 참혹했기에 내용을 그대로 영화에 담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비열하고 무책임한 엄마의 행태나 선정적이고 감정적인 연출은 최대한 배제하고 버려진 아이들이 엄마를 한없이 기다리며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 담담하게 그려낸다. 2004년, 제57회 칸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첫째 아키라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는 당시 14살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제31회 겐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존재감을 세계에 알렸다. 그 후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다 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어느 가족 등으로 자신만의 섬세하고 절제된 연출력으로 찬사를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을 겸비한 세계적인 거장으로 거듭난다. 국내에서는 2005년 4월에 첫 개봉에 이어 2017년 2월에 재개봉하기도 했다.

 

버려진 아이들

  • 첫째, 큰 아들 아키라 : 떠난 엄마를 대신해 세 명의 동생들을 돌보는 장남. 출생신고도 되어있지 않아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늘 동생들의 생계를 걱정하고 이리저리 알아보지만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동생들과 함께 살 수 없을까 봐 경찰이나 복지 소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아키라는 그런 아이다.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인내와 책임이 무엇인지 안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리고 어리광도 부리고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의 아키라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었다. 이 아이가 커서 사회와 세상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과 마음을 안고 살아갈지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 둘째, 딸 쿄코 : 오빠 아키라와 함께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피아노를 사려고 모아 두었던 용돈을 돈이 없어 걱정하는 오빠에게 내어준다. 조용하고 의젓해 보이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낀다. 오빠와 동생들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옷장에 들어가 몰래 울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찡해진다.
  • 셋째, 작은아들 시게루 : 자판기와 공중전화기에서 동전이 한 개라도 나오길 기대하는 엉뚱하고 장난기 가득한 아이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어느 날은 배가 고파서 종이를 씹어 먹기도 한다. 시게루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비중은 적지만 그나마 가장 보편적이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 넷째, 작은 딸 유키 : 아폴로 초콜릿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토끼 인형을 늘 안고 다니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 먹을 것이 부족해 배가 고파도, 한 여름 선풍기도 없이 땀을 뻘뻘 흘려도 잘 참고 견딘다. 생일날엔 엄마가 꼭 돌아올 거라며 한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아무도 모른다' 줄거리

엄마와 첫째 아들 아키라는 이사를 온 후 옆집에 인사를 하러 간다. 남편은 출장을 갔고 아들과 단 둘 뿐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집에 들어와 커다란 트렁크를 열어 동생들을 꺼낸다. 몸이 커서 트렁크에 들어가지 못한 둘째 쿄코는 아키라가 몰래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이사 온 첫날, 엄마는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룰을 설명한다.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지 말 것, 밖에 나가지 말 것, 심지어 베란다에도 나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엄마가 출근하자 아키라는 장을 보고 저녁도 준비한다. 쿄코는 빨래를 넌다. 퇴근 후 돌아온 엄마는 아키라의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딸의 머리도 빗겨주고, 아이들과 게임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때까지는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가족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쿄코에게 엄마는 아빠 없는 아이는 학교에 가봐야 따돌림을 당한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맴돈다. 엄마는 아키라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자 아키라는 "또?"라고 말한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아이들은 모두 아빠가 달랐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온 엄마는 다음날 아키라에게 당분간은 집에 못 들어오니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메모와 함께 돈을 조금 남기고 떠난다. 그렇게 떠난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돈은 떨어져 간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키라는 그동안 엄마가 만났던 남자들에게 돈을 빌리러 찾아가기도 한다. 편의점에 갔다가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의 도움으로 오해를 풀기도 한다.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남매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며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속이 상한 아키라는 엄마는 제멋대로라고 하자 아빠를 탓하며 본인은 행복해지면 안 되냐고 하며 다시 집을 나간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 아키라는 동생들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이고 싶어 추위에 떨면서 마감 세일할 때까지 기다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동생들의 이름을 봉투에 적어달라고 부탁하고 엄마가 세뱃돈을 준 것처럼 동생들에게 나누어 준다. 돈은 또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를 구해 보려고도 하지만 나이가 어려서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오빠에게 쿄코는 그동안 피아노를 사려고 모아 두었던 용돈을 오빠에게 건네준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봄, 아키라는 동생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온다. 편의점에서 사고 싶었던 것들을 사고 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여름이 되고 공과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수돗물마저 중단되자 공원의 화장실을 이용하고 빨래를 하고 마실 물을 받으러 간다. 그곳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해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여학생 사키를 알게 되고 아이들을 서로 금세 친해진다. 이제 먹을 음식조차 살 수 없게 된 아키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서 유통기간이 지난 음식을 받아가며 동생들과 겨우 끼니를 해결한다. 집세조차 낼 수 없게 된 아키라의 형편을 알게 된 사키는 어떤 아저씨와 가라오케에서 놀아 주고받은 돈을 건네지만 아키라는 실망하며 돈을 뿌리치고 돌아서 버린다. 아키라가 집을 비운 사이, 막내 유키가 의자에서 떨어져 쓰러지게 되고 마지막 남은 동전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동전이 부족해 전화도 끊기고 만다. 절박한 아키라는 약을 훔쳐 집으로 돌아오지만 유키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아키라는 결국 사키를 찾아가 지난번에 주려고 했던 돈을 다시 달라고 부탁한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는 잘 있다고 이번에도 애들을 잘 부탁한다는 메모와 함께 돈이 놓여있었다. 엄마는 이렇게 또 아이들을 버렸다. 그 돈으로 유키가 좋아했던 초콜릿을 한가득 사고, 유키가 좋아했던 토끼 인형과 가장 아끼던 신발을 신겨 트렁크에 담아 사키와 함께 공항으로 간다. 언젠가 유키의 생일날 엄마를 마중 나가겠다던 유키를 데리고 나가 돌아오지도 않을 엄마를 기다린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가던 모노레일을 보며 우리도 나중에 모노레일을 타고 비행기를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마지막 순간 아키라는 잊지 않고 그 약속을 지킨다. 그리고 유키가 들어있는 트렁크를 땅에 묻는다. 떨리는 아키라의 손을 사키가 꼭 잡아준다.

 

들꽃처럼 강인한 생명력

사실 나는 일본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어서 그냥 스쳐 넘겼던 작품이기도 했다. 포스터 속 배경과 아이들의 모습은 늘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기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영화일 거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 여겨져야 할 부모의 관심조차 무시된 채 세상과 단절되고, 기본적인 인권은 물론 최소한의 본능적인 식욕조차 충족될 수 없었으니 자유나 행복이란 감정조차 사치였기에 많은 것들을 망각한 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었다. 아이들을 이렇게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넣은 건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큐멘터리 연출가 출신답게 아이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마치 영화의 제목처럼 아무도 모르게 멀리 떨어져 관찰자의 시점으로 아이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그러다가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한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처절하고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하며 잠시지만 숨이 트이게 해 준다. 작은 두 어깨에 가장이라는 무게를 짊어져야 했을 아키라. 유통기한이 다 되었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음식을 챙겨주고, 야구부 감독은 대타로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아키라를 환하게 웃게 해 준다. 집에만 갇혀 있던 아이들 모두에게 따뜻한 봄을 선물하기도 한다. 편의점 쇼핑도 즐기고 공원에서 뛰어노는 게 전부이지만 아이들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처음 만나는 자유와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수구 근처에 핀 들꽃을 발견 한 아이들은 누가 버리고 간 거 아니냐며 불쌍하다고 씨앗을 집으로 가지고 온다. 빈 컵라면 통에 씨앗을 심고 베란다에 둔다. 햇빛도 주고 물도 주며 잘 돌봐준다. 들꽃은 아이들 자신과도 많이 닮아있다. 감독은 실화의 처참했던 상황을 다루는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극한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들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삶은 이어지고 희망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장면이기도 하다.

 

아동 방임은 학대와도 같은 사회, 국가적 문제

이 영화를 단순히 영화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일본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우리 주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는 부모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위대한 일인지, 얼마나 큰 책임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머리와 가슴으로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어른들에 의해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선택권은 없었다. 스스로가 원해서 세상에 나온 게 아니다. 자신들의 선택을 기분, 상황 등을 핑계로 아이들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공동 책임의식을 갖고 아동 방임을 예방하기 위한 전수조사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동 방임 역시 학대와 다르지 않다. 설사 신고를 하더라도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묻히기 다반사고,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엄중한 처벌조차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것은 명백한 어른들과 사회, 국가의 책임이며, 우리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다. 내 주변에 이런 아이들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땠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른 작품 어느 가족에서 처럼 데려와 키울 수는 없겠지만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아동 방임, 방치, 학대로 인해 고통받는 많은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