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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노매드 랜드, 유목민의 삶을 다룬 영화

노매드 랜드
Nomadland, 2020

노매드 랜드의 주인공 펀

2011년 경제 위기로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에 있는 석고보드 공장이 88년 만에 문을 닫게 됩니다. 엠파이어에서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직장과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합니다. 영화 노매드 랜드의 주인공인 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아였던 보와 결혼을 했지만 두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습니다. 부부는 마을과 사람들, 일과 집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오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 펀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 쓸쓸한 삶을 살아갑니다. 펀은 남편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마을을 떠나지 못합니다.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면 남편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펀은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문득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가 생각났습니다. 죽은 가족들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영화 코코처럼 펀의 삶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삶의 의미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펀은 정들었던 마을과 사람들,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밴을 타고 떠돌며 유목민 생활을 시작합니다.

 

유목민의 삶

캠핑카처럼 꾸며진 밴에서의 생활은 낭만적이기보다 불편함이 많습니다. 좁은 차 안에서 모든 식사와 숙박, 생리적인 부분도 해결해야 합니다. 따뜻한 집과 가족이 있는 나의 삶은 축복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극 중 마트에 간 펀은 자신이 알고 지내던 브랜디 가족을 우연히 만납니다. 지낼 곳이 필요하면 함께 지내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브랜디의 마음은 매우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펀은 정중히 거절합니다. 그녀가 가르쳤던 브랜디의 딸도 집이 없다는 펀을 걱정합니다. 펀은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주지가 없는 것이라 말합니다. 여행 도중 펀의 밴이 고장이 나서 정비소를 찾아갑니다. 정비소 직원은 수리비가 많이 나오니 차라리 밴을 새로 구입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펀은 차를 꾸미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기에 쉽게 처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수리비가 부족했던 펀은 돈을 빌리기 위해 언니의 집을 찾아갑니다. 언니는 함께 살자고 하지만 펀은 거절합니다. 유목민 생활중에 알게 된 남자 데이브의 집을 찾아갔을 때도 그는 함께 살자고 말하지만 이번에도 펀은 거절합니다. 모두 가족과 이웃, 맛있는 음식과 좋은 침대가 있는 따뜻한 집이었지만 펀에게는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펀은 안락한 침대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춥고 불편한 밴에서 잠을 청합니다. 펀에게 밴은 더 이상 차가 아니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되었습니다. 펀 역을 맡은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실제로도 밴 속에서 생활하며, 차 안에 있는 실내 소품까지 개인의 물건으로 꾸몄다고 합니다. 우리는 안정적인 삶의 기본이 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집 하나를 사고 넓히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며 애쓰고 살아갑니다. 펀을 통해 집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펀은 돈을 벌기 위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포장 일을 하고, 돌을 판매하는 곳에서도 일을 합니다. 캠핑장에서 청소도 하고, 식당, 농장에서도 단기로 일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펀은 자신의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거나 비관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갑니다. 단순 노동과 단기 아르바이트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국도 점점 고령화되어 가면서 노인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늘 젊은 사람들만 요구하는 한국의 노동현실에 비해 미국은 나이 든 사람에게도 기회를 준다는 것이 부럽기도 합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유목민들

펀은 여행 중 캠핑카를 타고 다니는 다양한 유목민들을 만나게 됩니다.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다양합니다.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잠시 만난 사람들과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치유를 받습니다. 전쟁 후 트라우마로 시끄러운 도시에서 살기 어려운 사람, 부모님이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전국을 여행하는 사람, 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을 즐겨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구를 보며 퇴직을 결심하고 유랑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처, 시한부의 삶... 그들은 모두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길 위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불행한 사람들이라기보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60대 린다 할머니는 금융 위기로 절망적이었습니다. 평생 일만 하면서 두 딸을 키웠지만 허무함 만이 남았습니다.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마음을 돌리고 인터넷에서 밥 웰스의 캠핑카 인생을 본 후 삶이 달라졌습니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하며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여행을 결심합니다. 70대 스완키 할머니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추억이 있는 알래스카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본 아름다운 광경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이 완벽해 짐을 느낍니다.

 

밥 웰스는 아들을 잃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들을 기리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습니다. 밥은 애리조나 쿼츠 사이트에서 유목민들을 위한 모임 RTR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돕습니다. 평생 돈에 구속되어 일만 했던 사람들이 점점 갈 곳이 없어지자 함께 서로를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마음도 치유합니다. 유목민들 대부분은 아픔과 이별을 경험한 나이의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지만 밥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유목민 생활에서 가장 좋은 것은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은 유목민들과 작별인사를 하지 않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말합니다. 신기하게도 실제로 다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합니다. 밥도 머지않아 그리운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펀에게도 언젠가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해 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답을 찾고,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며 살다 보면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유목민들은 음식과 필요한 물건들을 나누고 마음도 공유합니다. 자유롭지만 불편한 차 안에서의 생활하는 노하우도 배워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납니다. 펀은 많은 유목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위안을 얻고 삶에 대한 희망을 느낍니다. RTR이라는 모임은 실제로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펀과 데이브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배우가 아닌 실존 인물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그동안 고단했던 유목민들의 삶을 함께 들여다보며 내 마음도 위안을 얻는 기분이었습니다.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경들

펀은 거친 사막과 초원을 달리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경들과 마주합니다. 푸른 산에 올라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야생 동물들을 직접 보고, 흐르는 시냇물에 평화롭게 자신의 온몸을 맡깁니다. 펀이 일했던 장소 사우스 다코타의 배드랜즈 국립공원은 수백만 년의 세월을 이겨낸 암석들과 협곡으로 장관을 이룹니다. 펀이 거닐었던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거대한 나무의 모습은 신비롭고도 장엄합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아레나의 비 오는 거친 바닷가에 서있는 펀의 모습입니다. 자연과 하나 됨이 느껴지는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광활한 대자연 속에 서있는 인간의 모습은 한없이 작은 존재와 같아 보입니다.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사운드 트랙은 노매드의 삶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숨 막히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문득, 미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과 초원을 달리며 복잡한 현실을 모두 잊은 채 자연을 만끽하며 펀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진정한 노매드의 삶

펀은 그녀가 머물렀던 곳을 거쳐 다시 고향 엠파이어로 돌아갑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물건들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편과 함께 오래 일했던 공장으로 갑니다. 이미 폐허가 되어 먼지만 가득 쌓인 공장을 둘러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기억만 하며 인생을 보내고 있었던 펀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 과거를 이제야 보내줍니다. 그리고 소중했던 집을 둘러본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문 밖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한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미국의 개척민들이 처음 이 땅에 도착했을 때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모습이 반영된 것처럼 보입니다. 언니와 데이브가 함께 살기를 권했던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펀의 언니는 유목민들이 미국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초기 개척민들과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펀은 처음부터 가진 것 없이 이 땅으로 와 지금의 미국을 만든 개척자와도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정리한 펀은 밴을 타고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마침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니 용감하고 위대해 보입니다. 노매드의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이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펀의 여정이 끝나면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펀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며 돈과 물질, 집에 집착하며 나는 무엇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먼 훗날 나의 삶을 뒤돌아 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채워가야겠습니다. 영화 노매드 랜드는 세월이 흘러서 다시 꺼내보고 싶은 인생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