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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더 헌트, 진실을 외면한 사람들

The Hunt, 2012

아이의 거짓말

루카스는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차가운 물에 다이빙도 하고, 사냥도 하고, 맥주도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학교가 문을 닫은 후,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루카스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어 인기도 많습니다. 루카스는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 마쿠스와 떨어져 지냈지만 곧 아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어 기뻐합니다. 유치원에서 알게 된 교사 나디아는 루카스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보이고 둘은 사귀게 됩니다. 어느 날 장을 보러 간 루카스는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 클라라가 길을 잃고 서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루카스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를 집까지 바래다줍니다. 클라라는 루카스의 가장 친한 친구 테오의 딸입니다. 하루는 엄마 아빠가 싸우고 밖에 혼자 나와있는 클라라를 본 루카스는 손을 잡고 유치원에 함께 갑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는 루카스를 본 클라라는 갑자기 입술에 뽀뽀를 합니다.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입술 뽀뽀는 엄마 아빠한테만 하고, 선물을 또래 남자 친구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클라라는 루카스 몰래 하트 선물을 코트에 넣어두었습니다. 클라라는 내가 넣어둔 게 아니라며 기분이 상해 나가 버립니다. 어두운 곳에 혼자 앉아 있던 클라라는 원장님에게 루카스 선생님은 멍청하고 못생겼고, 하트 선물을 주셨는데 갖고 싶지 않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게다가 루카스의 은밀한 부분을 봤다고 이야기하며 모양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얼마 전에 클라라가 집에 혼자 있을 때 오빠와 그의 친구가 보여준 불순한 사진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루카스 선생님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합니다.

 

더 헌트, 시작

원장은 클라라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고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나쁜 일을 당했다고 추론하고 루카스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상담사를 불러 확인까지 합니다. 클라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애매하게 대답하지만 원장은 루카스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신합니다. 클라라 부모와 다른 학부모들을 모두 불러 루카스가 클라라에게 나쁜 짓을 했다며 경찰에 신고합니다. 학부모들에게 추가 피해자가 없는지 집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하고, 루카스의 가족들에게까지 이 사실을 알려 아들과 살기로 했던 일도 무산됩니다. 루카스는 원장과 클라라의 아빠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디아까지 혼란스러워하며 루카스를 의심하자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나디아와 헤어집니다. 루카스를 향한 마녀사냥이 시작됩니다. 루카스는 유치원에서 쫓겨나고 마을 사람들은 루카스를 혐오하며 범죄자로 몰아갑니다. 상황이 이상해지는 걸 느낀 클라라는 엄마에게 자신이 바보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고백하지만 엄마는 클라라가 충격을 받아서라고 생각하며 아이의 말을 무시합니다. 더 황당한 일은 다른 아이들도 모두 나쁜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루카스의 생활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리지만 아들 마쿠스와 친구 브룬은 그를 믿어줍니다. 마트에 간 마쿠스에게 마트 주인은 앞으로 오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루카스는 체포되고 마쿠스는 아빠의 친구 테오의 집으로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지만 아무도 아빠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옆에 있던 클라라를 보고 왜 거짓말을 하냐고 따지다가 아빠 친구들과 싸움이 붙고 테오 집에서 쫓겨납니다. 다행히 브룬과 그의 아버지, 매제들이 루카스를 돕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모두 루카스의 집 지하실에서 나쁜 일을 당했다고 말했는데 사실 루카스의 집에는 지하실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친구와 어른들의 말에 현혹되어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루카스는 무죄로 풀려납니다.

 

진실을 외면하다

하지만 루카스의 시련은 이제부터입니다. 무죄로 풀려났지만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음식을 사러 간 루카스는 마트 사람들에게 치욕적인 말을 듣고 폭행을 당해 쫓겨납니다. 누군가는 집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반려견 패니도 없애버립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루카스는 교회로 갑니다. 사람들의 삐뚤어진 시선을 참아내며 자리에 앉은 루카스는 친구 테오의 눈을 계속 바라봅니다. 테오도 루카스의 눈을 한참을 바라보다 혼란에 빠집니다. 그제야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직감합니다. 루카스는 테오에게 가서 내 눈에 뭐가 보이냐, 아무것도 없다고 소리치며 테오를 때립니다. 그만 괴롭히고 날 좀 내버려 두라며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터트립니다. 집에 와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테오는 잠이 든 딸의 방으로 갑니다. 클라라는 잠이 덜 깬 듯 아빠의 그림자를 보고 루카스로 착각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고 속삭입니다. 아빠가 들어오자 잠이 깬 클라라는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했고 루카스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합니다. 테오는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음식을 챙겨 루카스의 집을 찾아갑니다. 루카스는 테오가 싸온 음식을 맛있다고 먹어주고 집에 가라고 하지만 테오는 너만 괜찮다면 좀 있다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습니다. 1년 후, 성인이 된 마커스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입니다. 사람들은 성인이 된 마커스를 축하해 주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가보인 총을 선물 받습니다. 그리고 루카스는 클라라와 마주치게 됩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바닥에 있는 선을 밟지 못하는 클라라를 들어 안아 선이 없는 곳으로 옮겨줍니다. 남자들은 사냥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갑니다. 지나가는 사슴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루카스를 향해 총알이 날아옵니다. 다행히 총알은 옆에 있던 나무에 맞습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불안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영화 더 헌트는 끝이 납니다.

 

계속되는 사냥

영화 더 헌트는 2012년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덴마크 영화로 그해 유럽영화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덴마크 출신 배우 매즈 미켈슨은 더 헌트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한 아이의 작은 거짓말이 순식간에 커져 한 남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습니다.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린 주인공 루카스는 잘못된 말과 소문으로 마을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어 버립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황당한 거짓말을 하는 클라라가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클라라는 자신이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집을 잃어버리고, 가는 길도 기억 못 하는 인지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미성숙한 어린아이입니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조언을 단순하게 자기를 싫어해서라고 받아들인 클라라의 좁은 세상에서는 모든 걸 다 잃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클라라는 잘못을 바로 시인합니다. 클라라는 어려서 그렇다고 치지만 어른들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위여부를 떠나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현실과도 다를 것 없어 보입니다. 특히 원장이란 사람이 그 소문의 시초가 됩니다. 원장은 루카스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고, 귀를 막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전제를 깔고 사건을 확대 해석합니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 루카스는 친구들에게도 거짓말을 못하고, 거짓말을 하면 눈에 드러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루카스의 눈을 테오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봐주었다면 일이 이지경이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걸을 때 바닥의 선이 있으면 밟지 못하는 클라라를 안아주는 장면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정한 어른의 행동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착하고 배려심 많은 루카스가 억울한 사건의 피해자가 된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아이들이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들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런 행동은 실제 아동학자에 의해 밝혀졌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작용했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마녀사냥은 지금도 뉴스, 언론, 각종 SNS를 통해 일어나고 있는 현대 사회의 큰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아직 미숙한 아이들은 이런 다양한 매체에 그대로 노출되어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 어른들은 생각을 말함에 있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오해가 풀린 것 같지만 마지막까지 루카스는 웃을 수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릅니다. 한번 찍힌 낙인은 죄가 있던 없든 간에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누군가가 루카스를 향해 총을 겨누었을 때, 잘못된 것임을 알았음에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씁쓸해집니다.